[인터뷰] 채종희 서울대병원 교수 “新희귀질환 발견은 바다 속 새 물고기 찾는 퍼즐”
영유아 유전자 관련 신경근육계 질환 중 사망 원인 1위인 희귀병 척수성 근위축증(SMA) 환자들에게 최근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1년에 약 6억원(1회 주삿값 약 1억원 기준)의 비용이 들어가는 척수성 근위축증 치료제가 올 4월부터 국내에서 보험급여 적용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환자는 소득 수준에 따라 1년에 81만원에서 최대 580만원 약 값만 부담한다. 희귀질환 치료의 보장성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척수성 근위축증과 유사 계열의 질환으로는 영국의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 앓은 루게릭병이 있다.
이 과정에서 기여한 인물이 있다. 채종희 서울대학교 어린이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다. 국내 소아 희귀질환 분야 전문가로 손꼽히는 그는 유전성 신경계 질환 진단 및 치료에 독보적인 경험을 갖고 있으며, 올 2월에 국가에서 지정한 희귀질환 중앙지원센터장으로도 활동 중이다.
지난 5일 서울대 어린이병원에서 채 교수를 만나 희귀질환 진단을 위한 노력, 국내 치료환경 개선을 위해 필요한 점 등에 대해 들어보았다. 국내에서 특정 병을 앓고 있는 인구가 2만명이 안되면 희귀질환으로 분류된다. 국내에서는 100만 명 환자들이 1200여 종의 희귀질환을 앓고 있다.
채 교수는 “척수성 근위축증은 희귀질환 연구가 진단과 치료까지 이어져, 많은 환자들의 생명과 건강에 기여한 모범 사례”라면서 “앞으로 다양한 영역에서의 치료제 개발, 보험급여 적용이 확대돼 더 많은 환자들이 치료 기회를 얻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척수성 근위축증은 1850년 경 미국에서 처음 진단된 이후, 치료제가 개발되기까지 150여년이 걸렸다.
채 교수는 희귀질환의 조기 발견을 강조했다. 제주도에서 척수성 근위축증 치료 희망을 가득 품고 상경한 한 중학생은 병원에서 치료제 투여가 의미가 없다는 말을 듣고 1시간이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 치료제는 살아있는 근육세포에만 투여 가능하기 때문이다.
채 교수는 “희귀질환이라는 역경을 이겨내고 휠체어에서 손가락 움직임 만으로 학업에 전념해 명문대에서 수학하는 인재들도 많다. 우리나라에서도 스티브 잡스가 나올 수 있을 지 누구도 모른다”면서 “훌륭한 인재들이 질병이라는 문턱에서 좌절하지 않도록 치료제가 개발된 희귀질환 영역에서는 하루 빨리 조기 검진이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신생아 선별검사 항목 확대 필요성도 제기했다. 보건복지부는 1985년 신생아 선별검사를 시작, 2006년부터는 단풍당뇨증, 호모시스틴뇨증, 갈락토스혈증 등 검사를 신생아에게 무료로 지원한다.채 교수는 “국가 신생아 선별검사 항목에 치료제가 발견된 척수성 근위축증 등도 포함해야 한다”며 “조기에 진단만 받아도 치료가 가능하고, 삶의 질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만 신생아 선별검사는 ‘양날의 검’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채 교수는 “신생아 때부터 유전자 검사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지만 상업적 목적을 가진 무분별한 요구”라고 지적했다. 그는 “진단 결과 희귀질환으로 판정됐지만 치료제가 없거나, 문제가 되는 유전자를 보유했지만 성인이 되면 발현될 확률이 높다는 예측 진단은 자칫하면 환자와 가족 모두에게 절망만 안길 수 있다”면서 “치료제가 확보되고 희귀질환으로 정확히 판별 가능한 질환에 대해 선별검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새로운 희귀질환을 찾아내는 것은 의료계의 숙제다. 채 교수는 “전세계 의학자들이 힘을 모아 매년 약 100여종의 희귀질환을 찾아낸다”면서 “바다에서 새로운 물고기를 발견하듯, 새로운 희귀병이 의심되면 각 국가의 학자들과 네트워크를 통해 사례를 확보하고 연구에 힘을 쏟는다”고 말했다.
그는 미진단된 희귀질환을 찾아내는 것을 ‘퍼즐 맞추기’에 비유했다. 채 교수는 퍼즐을 풀고자 희귀질환 전문가들이 새로운 질환 발견·연구를 위해 설립한 국제 미진단 희귀질환 네트워크(UDNI, Undiagnosed Disease Network International) 한국 대표 연구자로도 참여한다. UDNI는 미국, 유럽, 한국을 포함한 각국 정부기관, 대학, 병원, 연구소 등 희귀질환 전문가들로 구성돼 있다. 매년 국제회의를 통해 국가별 미진단 프로그램 현황 및 진단 사례, 데이터 등 활용방안 등을 공유한다.
질병관리본부 국립보건연구원은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미진단 희귀질환 연구 지원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채 교수는 국가 미진단 희귀질환 연구사업팀 책임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는 “1년에 많게는 5~6개 희귀질환을 발견하는데 기여한다”면서 “환자 사례가 적어서 원인과 증상을 명확하게 규명하기 어렵고, 진단하더라도 치료제 개발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그럼에도 장기적 관점에서 연구를 지속하면 질환 치료에까지 이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희귀질환 영역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2만여개의 유전자 암호를 단순히 파악·분석하는 작업에 그쳐선 안된다”며 “환자와 끊임없는 소통을 통해 증세를 파악해 희귀질환 여부를 파악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희귀질환 치료과정에서 나타나고 있는 서울 등 수도권 대형병원 쏠림현상도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희귀질환 특성상 치료법에 불신을 갖는 환자들이 이곳 저곳 병원을 전전하는 이른바 ‘병원 쇼핑족’이 많은 게 현실이다.
실제 희귀질환 진단까지 소요시간은 64.3%가 1년 미만, 10년 이상도 6.1%이며, 최종 진단까지 16.4%의 환자가 4개 이상 병원을 다닌 것으로 조사됐다. 질병관리본부가 올해 2월 희귀질환 권역별 거점센터를 기존 4곳(대구·경북, 부산·경남, 충청, 호남)에서 11곳(중앙 1곳, 권역 10곳)으로 늘린 배경이다.
희귀질환 중앙지원센터장인 채 교수는 “희귀질환 영역은 수도권이나 지방이나 최고의 선생님들이 환자를 진료한다”면서 “질병 진단기간을 단축하고 지방 등 권역별로 치료가 더 잘 이뤄지도록 진료 역량과 의료서비스 확대에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희귀질환 영역에서도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를 적용하는 진단하는 바람이 불고 있다. 채 교수는 “희귀질환은 환자 데이터가 적고, 유전체 분석 등을 통해 도출할 수 있는 진단 오차 범위가 클 수 밖에 없어서 신중을 기해야 한다”며 “정석대로 진료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AI 등 기술 발전이 희귀질환 진단과 연구에 도움을 줄 수 있겠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며 “기술을 맹신해선 안된다”고 지적했다.
“희귀 질환은 보는 환자도 귀하고 의사도 귀합니다.” 그는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차근차근 질병 진단·치료법을 모색해야 한다”면서 “국가도 장기간 시간이 소요되는 희귀질환 치료 분야에 대한 성과물을 재촉만 할 것이 아니라, 격려하고 지원해야 한다”고 밝혔다.
척수성 근위축증을 비롯해 레트증후군, 미토콘드리아병, 신경섬유종 등 전 세계에서 보고된 희귀난치성 질환은 약 7000~8000여 종에 이른다.특히 소아 희귀질환은 영유아의 사망을 야기하며, 조기 진단을 놓칠 경우 성장 과정에서 삶의 질이 현격히 떨어지기 때문에 진단과 치료 과정에서의 체계적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 전체 희귀질환 중 치료제가 개발된 질환은 약 10%이며, 치료제가 있더라도 대부분 비급여다. 치료를 받지 못하는 환자들도 허다하다 보니 환자 치료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제도 개선도 여전한 숙제로 남아 있다는 지적이다.
조선일보 | 2019.08.07